우리 집 냄새가 어떤 향인지 생각해본 적 있으신가요?
향은 기억보다 오래 남습니다.
누군가의 집 문을 열었을 때 느껴지는 특유의 향,
그 향은 그 사람의 성격이나 취향,
심지어 그날의 기분까지 말없이 설명해주곤 해요.
이 글은 우리 집만의 냄새를 중심으로
일상을 향기로 기록해보는 에세이입니다.
주방에서 퍼지는 따뜻한 국 냄새,
햇살 머금은 빨래의 포근한 향,
아이의 책상 위 지우개와 색연필 냄새,
밤이면 은은하게 피어나는 디퓨저 향기까지.
우리가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분명히 존재하는,
우리 집을 우리 집답게 만드는 냄새들.
그 향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내 삶의 조각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향으로 쓰는 자서전,
지금부터 펼쳐볼게요.
1. 아침, 햇살과 섬유유연제의 조화
하루를 시작하는 냄새는
다림질한 이불과 햇살의 조합입니다.
조용한 아침, 창문을 열면
찬 기운과 함께 포근한 이불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혀요.
전날 저녁 세탁기에 돌려둔 빨래들이
따뜻한 햇살을 만나며 풍기는 섬유유연제 향,
그건 마치 작은 위로처럼 느껴집니다.
아들의 교복에 남은 지난 밤의 세제 냄새,
욕실에서 나는 치약과 비누 향,
바닥 청소 후 은은하게 퍼지는 레몬향 세제 냄새.
이 모든 향들이 합쳐져
우리 집의 아침을 알립니다.
누군가에겐 아무 냄새도 아닐 수 있지만
저에게는 이 향들이 ‘하루의 리듬’을 만들어주는
작은 신호예요.
가끔 외출했다 돌아오면
우리 집 특유의 ‘정돈된 냄새’가 반겨줍니다.
그건 단순히 제품의 향기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온 시간의 결이 섞인
정겨운 향이에요.
2. 오후, 주방의 냄새는 가족의 언어
하루 중 가장 다양한 향이 퍼지는 곳은
역시 주방입니다.
오후 4시쯤, 부엌에서는 저녁 준비가 시작됩니다.
참기름 두른 팬에 마늘을 볶을 때의 고소함,
끓는 국물에서 올라오는 깊은 향,
때로는 라면스프 특유의 자극적인 냄새까지.
이 냄새들은 식욕을 자극할 뿐 아니라
어린 시절의 기억까지 끌어올립니다.
엄마가 된 지금,
제가 아이에게 만들어주는 반찬 냄새도
어쩌면 훗날 그의 기억 속
‘우리 집의 냄새’로 남겠지요.
특별한 요리를 하지 않아도
쌀 씻는 냄새, 김치통을 열 때 퍼지는 향,
빵 굽는 토스터기에서 나오는 따뜻한 향기.
이 모든 게 집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소박한 향의 기록들입니다.
가끔은 요리 실패의 냄새도 납니다.
너무 바짝 구운 고기나,
넘친 국물이 타는 냄새도요.
하지만 그 모든 냄새조차
우리 가족의 하루를 증명해주는 언어가 됩니다.
3. 밤, 디퓨저와 책 냄새로 마무리되는 하루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
거실 조명을 낮추고 디퓨저를 새로 갈아 끼웁니다.
요즘 자주 사용하는 건
패츌리와 우디 계열이 섞인 편안한 향이에요.
잔잔하게 퍼지는 그 향은
하루를 차분히 마무리하는 데 꼭 필요합니다.
아들은 자기 전에 꼭 책을 한두 권 읽어요.
그 책을 펼칠 때 나는 종이 냄새,
연필로 낙서를 하며 나는 흑연의 냄새,
그 모든 게 아이 방의 고유한 향기를 만듭니다.
가끔은 책상 위에 흩어진
풀과 크레용 냄새도 섞여 있어요.
그 향기를 맡으면
‘아이답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순간이 떠오릅니다.
가족 모두가 잠든 밤,
캔들을 하나 켜고 혼자 있는 시간엔
조용히 그날의 향을 되새깁니다.
오늘은 어떤 냄새로 하루가 흘렀는지,
그리고 그 냄새가 나에게 어떤 기억을 남겼는지.
우리가 평소 무심코 지나쳤던 향 속에는
사랑, 피곤, 노력, 평화…
그 모든 감정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향기는 결국
‘우리 집이 우리 집다울 수 있게’ 해주는
가장 진짜 같은 정체성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