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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는 멈추지 않다. 았내 일상의 클로즈업

by 봄가을겨울에 2025. 4. 10.

하루는 오프닝 시퀀스 없이 시작된다.요란한 배경음악도 없고, 멋진 크레딧도 없이 하루가 시작된다.
눈이 반쯤 감긴 채 핸드폰 알람을 끄고,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적신다. 커튼을 걷는 순간 창밖의 햇살이 렌즈 플레어처럼 내 방 안으로 들어오고, 그제야 정신이 조금씩 맑아진다.

이 장면을 누가 찍는 것도 아닌데, 나는 종종 상상한다.
‘지금 카메라가 있다면, 어떤 구도로 찍힐까?’
‘음악은 어떤 게 어울릴까? 포크? 아니면 재즈?’

아무도 보지 않지만, 나는 매일의 시작을 내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처럼 느끼려 한다.
그렇게 마음가짐 하나로 평범한 하루가 조금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카메라는 멈추지 않았다. 내 일상의 클로즈업
카메라는 멈추지 않았다. 내 일상의 클로즈업

 

1. 소리 없는 대사들, 일상의 클로즈업


이야기가 없는 하루라고 생각했던 날에도
누군가와 나눈 짧은 눈맞춤,
카페에서 들은 옆 테이블의 대화,
버스 창밖을 보며 떠오른 오래된 기억들은
내 영화의 ‘무성 대사’처럼 스쳐 지나간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어제 저녁.
편의점 앞에서 라면을 먹는 청년의 손이 너무 떨려 보여
왠지 모르게 마음이 묘해졌다.
그 순간, 나는 속으로 혼잣말했다.

“카메라는 그의 손을 클로즈업한다.
젓가락을 쥔 손가락, 묘하게 흔들리는 스프 봉지.”

누군가에겐 사소하고 하찮은 순간이지만,
이런 장면들이 오히려 더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내 영화는 이런 조용한 장면들로 채워져 있다.

 

2. 배경음악은 귀에 들리지 않는다


하루 중 문득 ‘지금 BGM이 깔린다면 어떨까?’ 싶은 순간이 있다.
사무실에서 혼자 남아있는 야근 시간,
비 오는 날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이어폰 없이 멍하니 앉아 있는 그 시간.

나는 그런 순간에 내 마음 속 음악을 튼다.
이루마의 피아노곡이 흐를 때도 있고,
어느 날은 영화 _Her_의 사운드트랙이 흐르기도 한다.

음악은 내 기분에 따라 달라지고,
때론 음악이 먼저 흐른 뒤에 감정이 따라오기도 한다.
이건 내 감정의 편집실.
삶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적절한 사운드트랙을 깔며 다시 살펴보는 것.
내겐 그것만으로도 하루가 영화처럼 느껴진다.

 

3. 엔딩은 늘 예고 없이 찾아온다


대부분의 영화는 엔딩이 가까워질수록 음악이 서서히 흐르고, 조명이 낮아지고, 감정이 고조된다.
하지만 우리의 하루는 그렇지 않다.
내 하루의 마지막 장면은 대개 무너진 자세로 핸드폰을 보다가 졸린 눈으로 불 끄고 누운 순간이다.

그런데 가끔은 아주 조용한 클로징이 찾아올 때가 있다.
창문을 타고 들어온 바람이 커튼을 살짝 흔들고,
그 틈으로 보이는 달빛이 방 안을 적실 때.
혹은 누군가의 톡 한 줄,
"오늘 고마웠어."라는 짧은 메시지에 내 마음이 묘하게 정리될 때.

그럴 땐 생각한다.
“아, 오늘 이 장면으로 끝나는구나.
조명 꺼졌고, 음악도 페이드아웃.”

이런 순간들이 쌓여 내 인생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완성하고 있다.
지루하다고 느껴지는 하루 속에도,
사실은 스태프 롤이 흐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에필로그, 매일을 기록하는 이유
나는 아직도 내 인생의 장르가 뭔지 모른다.
로맨스일까, 성장영화일까, 아니면 다큐멘터리?

그럼에도 확실한 건,
내가 지금도 찍히고 있다는 상상만으로
더 의식 있게 살아가게 된다는 것.
카메라는 멈추지 않았고,
나는 매일 그 안에서 배우처럼 살아간다.

아마 언젠가 누군가에게
“그 장면, 좋았어요”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그때 비로소 나는
‘내 영화, 잘 찍고 있었구나’ 하고 웃을 수 있을 것 같다.